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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CJ 그림책 축제 (2009.01.21 ~ 2009.03.01)

이 분 뵈러 가려고 엄청나게 벼르다가, 결국 전시 종료 2일 전에 급히 성곡미술관에 다녀왔습니다. :]


 행사의 취지에 '그림책은 어린이와 과거 어린이였던 사람들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매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운운한 것치고는 애 딸리지 않은 사람에 대한 배려가 심각하게 부족해서, 계속 이런 식이라면 다음 행사에는 가게 될 것 같지가 않았어요. 그림책을 마음대로 펼쳐볼 수 있도록 한 것은 좋았지만 거기서 애한테 책 한 권을 다 읽어 주고 있는 분들이 너무 많더군요. 그 분들 중 한 분은 제 다리를 유모차로 찍었고(이 때는 사과했습니다) 유모차에 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려고 앉다가 제가 보던 책이 놓여 있는 전시대를 밀쳤고(이 때는 사과하지 않았을 뿐더러, 전시대도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다른 분은 제가 펼쳐놓고 보던 책 위에 책을 얹고 떠나시더군요. ^_^;

 이런 전시의 경우에는 이 아수라장을 수습하는 것이 미술관 직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관람중일 때 이 행사에서 표 받는 이외의 유일한 인력은 데이빗 위즈너의 그림에 대해 사람들에게 '설명' 한다는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일에 쓰이고 있었습니다. 아니, 작가 정보나 배경을 설명하는 게 아니었어요. 벽에 걸린 위즈너의 그림을 보면서 '이 장면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다니까요!

 그리고 저는 도록을 사려고 줄섰다가 다섯 번 새치기를 당했습니다. 바로 앞에 줄 서 계시던 부부께서는, 한 분은 살 책 목록(전시되었던 그림책 중, 한국에서 출판된 것들을 할인판매하고 있었습니다)을 두고 "음~이거랑, 또 이거랑, 또 뭐였더라? 그것도 사기로 했던가? " 하는 기억력 테스트를 하고 계셨고 다른 한 분은 직원 앞에서 머리를 쓸어올리며 잘난 척 하느라 여념이 없으시더군요. 참고로 기억력 테스트하시던 분은 목록을 핸드폰에 메모해 오신 다음에 안 보고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한참 "음~뭐더라? " 한 다음에 전화기를 꺼내서 확인하시더군요. 저 두 분이 버티고 계시는 동안 네 명이 끼어들었고, 제가 도록 달라고 말한 후에도 직원이 다음 사람 돈을 먼저 건네받더군요. 이걸로 확실해졌습니다. 저는 크리스토퍼 프리스트가 말한 글램glam의 일족임이 분명합니다.

 이런 짜증을 날려버릴 만한 전시 내용이 존재했느냐면...그렇다고 답해야겠습니다.

 가끔은 이 나이 먹고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데이빗 위즈너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저는,
  (엄청나게 위즈너 풍인) 천장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거대 민들레 홀씨에 황홀해지고, 작고 섬세하기 그지없는 위즈너의 원화에 말을 잃었으며, 벽 한 면에 길게 펴 놓은 [자유 낙하] 앞을 몇 번씩이나 왔다갔다했습니다. 함께 전시된 [자유 낙하]의 스케치에는 출판된 책에는 들어 있지 않은 부분이 하나 있더군요.
 왜 빠졌는지는 알겠어요. 그렇게까지 인상적이거나 재미있지도 않고, 완성본을 본 입장에서는 쓸데없다는 인상이 더 강하게 들기도 하지요. 하지만 저는 이 부분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인 취향이겠지요. :]
  이 분들이야 말이 필요없지요. [이상한 화요일]의 원화 앞에서, 제 뒤에 있던 커플의 여자분이 속삭이시더군요. "개구리가 웃고 있어..." :] 저도 그 책을 볼 때마다 늘 그런 생각을 해요. (그리고 수박이 먹고 싶다는 생각도요. 저 무늬를 계속 보고 있으면 정말로 수박이 먹고 싶어진단 말이에요! )

 기대했던 [이상한 화요일]의 애니메이션판은 그냥 그럭저럭. 아무리 날고 있다고는 해도 개구리인데, 표정을 너무 살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작과 음악은 폴 매카트니, 성우는 폴 매카트니와 더스틴 호프만입니다. (...)

 시끄럽고 정신없고 사람에 치이면서 넘겨본 책들 중에는, 다행히도 이 피로를 싹 날려버릴 만큼 멋진 것들이 몇 권 있었습니다. 그 중 두 권을 소개할게요.

 첫번째는 Svjetlan Junaković의 [Gran Libro de los Retratos de Animales(=Great Book of Animal Portraits)].
눈에 익은 그림이지요? :]

Lady with an Ermine
Leonardo da Vinci, 1489-1490
Oil on wood panel
54 cm × 39 cm
Czartoryski Museum, Kraków

저런 강렬한 표지에, 펴자마자 이런 분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마주치게 됩니다.
Portrait of a Young Woman
Jan Vermeer van Delft, 1665-67
Oil on canvas
44.5cm × 40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개구리가 더 미인이군요.
네, 이런 책이에요. :]


 두번째는, Joanna Concejo의 [Il signor Nessuno(=Mister Nobody)]입니다. 앞서 소개한 [Gran Libro de los Retratos de Animales]가 '무척 재미있는' 정도였다면, [Il signor Nessuno]에는 홀딱 반했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어 쪼렙인 상태로도 어찌어찌 읽을 수 있었기에, 내용에 완전히 반해 버렸습니다. 옛날 프뢰벨 전집의 어느 작품과 몹시 비슷한 느낌인데, 어느 작품인지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까요. :]
이 책은 좀 무리를 해서라도 갖고 싶네요.


  굴욕의 도록입니다. 나름 상세하고 재미는 있었지만요.
  하지만 그날의 최대 굴욕은 사실은 이 파스타였을지도 모르겠어요. 특색있는 맛이었는데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별로 입에 넣지도 못했습니다. ㅜ.ㅠ

by euphemia | 2009/03/22 05:42 | MidnightFeast (어린이책) | 트랙백(1)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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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EST's nEST at 2009/03/22 09:18

제목 : 제 1회 CJ 그림책 축제: 090131
지난 1월 21일부터 광화문 성곡미술관에서 시작된 제 1회 CJ 그림책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행사 기획과 진행에 평소 인연이 있는 상출판사(상그라픽아트)가 관여하기도 했고, 자주 가보진 못했지만 그림책과 관련해서는 좋은 전시를 적잖이 열었던 성곡미술관인지라 이래저래 관심이 있었던 참입니다. 때마침 날씨가 좀 풀려 춥지도 않았고 하늘도 화창한 날이라 오랜만의 미술관 나들이엔 더할나위없이 좋은 날이었어요. 이번 행사는 응모를 통해 심사위원들이 선정......more

Commented at 2009/03/22 06: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euphemia at 2009/03/23 20:58
[구름 공항]의 구름들도, 그리고 전시장 바깥에는 [1999년 7월 29일]의 거대 파프리카도 놓여 있었어요. :]

실은 이런 꼴을 당하게 된 건 반쯤은 자업자득입니다. 전시가 막 시작되었을 때 소식을 알게 되어서...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두 달을 별렀던 거예요. 하지만 1월 초부터는 정말로 몸이 안 좋아서 자세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끝이 없는 기침을 하곤 했거든요. 그러니까 끝나기 이틀 전에 나가면서 붐빌 줄 몰랐던 건 아니었어요. 무서운 꼴 당할 건 각오하고 나갔지만, 좀 상상 밖의 일을 당한 게지요. 애들한테 치일 줄 알았는데 어른이었어요.
Commented by Gerda at 2009/03/22 12:50
가고 싶었지만 거리도 멀고, 애들 많은 곳은 가고 싶지가 않아서... 싸가지없는 부모를 보면 저런 부모 밑에서 어떤 애가 자랄지 생각만 해도 소름끼칩니다.
Commented by euphemia at 2009/03/23 21:00
가끔 그런 부모 밑에서 깜짝 놀랄 만큼 훌륭한 애가 자라는 경우도 있기야 하지만...orz
이번에는 역시 애들보다 부모들이 문제였어요. 애가 안 시끄러웠다는 건 아니지만...마지막엔 신경이 날카로워져선. 복도에서 빽빽 소리지르는 애한테 날카롭게 조용히 해, 하고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냅다 튀었어요. -ㅅ-
Commented by 루시엔 at 2009/03/22 13:00
전 여기도 좋지만 볼로냐 그림전시회도 좋더라구요.

....거기도 애들은 쩔었지만...
정말 유모차 끌고 나오신 분들은 어떤 생각이셨는지;;; 애가 그걸 본다고 해도
알아보는 것도 아닌데요ㅠㅠㅠ
Commented by euphemia at 2009/03/23 21:03
볼로냐전은 못 갔어요! ;_; 나중에 다녀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도록 위에 침을 뚝뚝 떨궜지요. ㅠ_ㅠ
유모차를 일일이 들여다본 건 아니니, 그 애들이 생각보다는 큰 애들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면...또 다른 종류의 번뇌에 부딪히게 되는군요. 방법이 없네요. ;_;
Commented by 핑크팬더 at 2009/03/22 13:43
그림 마음에 들어요. 특히 양을 안고 있는 양 그림이요 +_+

전 볼로냐 그림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전시 마지막날 가서 그런건지 그림책 전시라는게 원래 그런 곳인지, 의욕 넘치는 부모+아무 생각없는 아이들 때문에 숨막혀 죽는 줄 알았어요. 웃긴 건 부모의 의욕이 넘칠 수록 애들의 아무 생각없는 정도가 높아진다는 거(...)
Commented by euphemia at 2009/03/23 21:07
헉, 실은 저 그림(의 원작)의 제목은 [흰족제비를 안은 여인] 이랍니다.
하지만 저 제목을 알고 있는 저도 저 그림에 그려져 있는 생물을 처음 봤을 때 '양? 염소?!' 라고 생각했었어요. orz 덕분에 핑크팬더 님 덧글을 처음 봤을 때 가슴이 뛰었습니다. (...)

의욕이 넘치는 부모와 아무 생각없는 애들의 좀 다른 변형 하나를 목격했었는데요, 그런 어머님(...)께서 초등학교 3-4학년은 더 되어 보이는 아이한테, 아무리 봐도 숫자 갓 배우는 유아용인 그림책을 열정적으로 권하고 계시더군요. "이거 재미있겠지? 그치? " 아이는 싸늘하게 대답했습니다. "유치할 것 같은데?
...^_^;

Commented by 핑크팬더 at 2009/03/23 21:34
아놔. 그러고보니 저것이 양이 아니고 흰족제빈데 동물 앞다리 근육의 섬세한 묘사 어쩌고 한 미술사 강의가 생각났어요(...) 저 때문에 잠시나마 설레셨다니 동지 발견(와락)
Commented by euphemia at 2009/03/29 00:03
섬세한 근육!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한편, *와락*
Commented by keira at 2009/03/22 22:22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에 6개월 정도로밖에 안 보이는 간난쟁이를 데려와 그림을 보여주시던 분도 본 적 있습니다. 재미있는 전시회 같은데 아쉽게도 이미 끝났군요.
Commented by euphemia at 2009/03/23 21:08
위 덧글들을 보니 좀 일찍 포스팅할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6개월의 르네 마그리트...아니, 차라리 그 나이 정도 애라면 시각 발달에 도움이 되니까, 라고 생각할 수도...아니 역시 못 하겠어요. 죄송합니다. orz
Commented by 핑크팬더 at 2009/03/23 21:33
6개월의 시각 발달을 위해선 '모빌'이라는 훌륭한 물건이 존재하는 거 아닙니까 ;ㅁ;
Commented by euphemia at 2009/03/29 00:03
하하하.^ㅁ^;
Commented by 슈아 at 2009/03/22 23:29
그냥 쭉쭉쭉 보고 있는데.... 와아아아아 ㅠㅠㅠㅠ 민들레민들레민들레에ㅔ에에에ㅔㅠㅠㅠㅠㅠㅠㅠ
멋지네요 이쁘다 보고 싶다 우와우와;ㅁ;;;; 어떻던가요 이쁘던가요 좋겠다아아아아;ㅁ;;;;
잘 지내고 계신가요*ㅁ*!!!!
Commented by euphemia at 2009/03/23 21:10
민들레 멋지죠:] 몇 장을 더 찍었는데 제대로 나오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쉬워요. '떨어지는' 동세가 좀 더 확실한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천장이 확 트여서 멋있더라고요. 형도 갔으면 좋았을 걸 ;_;
조만간 본가에 내려가요. 또 형을 만나러 갈게요! :]
Commented by 개멍 at 2009/03/23 00:20
자식들을 위해선 품위를 버려도 된다고 생각하는 족속들에게 저주를. 아이들은 결국 부모를 보고 배우는 법이니 저같은 인간이 저주를 할 필요도 없겠지만.
Commented by euphemia at 2009/03/23 21:11
아아아;ㅁ;
Commented by EST_ at 2009/03/23 10:50
저도 개구리들이 사람 해부하는 컷 보면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기묘한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제가 갔던 토요일 오전에도 아이들 데려와서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하시던 분들이 있었는데, 몇몇 볼륨조정장치가 고장난 어른들 때문에 좀 힘들긴 했어요.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고 해도 무슨 어린이집 쯤으로 여겨선 곤란한데 말입니다.
Commented by euphemia at 2009/03/23 21:14
양인의 개구리란 왜 이렇게 모에한 것일까요 ;_;

역시 하다못해 오전에 나서야 했었어요. 덕분에 여러 가지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경험을 했습니다. 애들한테 그 자리에서 한 권을 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다고만 썼지만...그것이, '구연동화' 였단 말이에요! ;ㅁ;

전시장이 돌이킬 수 없이 어질러져서 이름표와 책의 싱크가 맞지 않는 것도 여럿 있더군요. 몇 개 정리하다가 포기했습니다. 다음에도 이런 식이라면 심히 곤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ㅠ_ㅠ
Commented by 노크 at 2009/03/23 23:38
아 ;_; 부러워라! 나도 저곳에 정말 가고싶었는데 아르바이트때문에 가질 못했어요.
횽의 포스팅을 보니 더더욱 배가 꾸룩꾸룩… 잉잉ㅜㅜ
Commented by euphemia at 2009/03/29 00:04
형이 여건만 되었더라면, 형이랑 같이 갔어도 좋았을 텐데 ;_;
다...다음에 또 더 멋진 전시가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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