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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의 미스터리한 6월

-앞으로 이와 같은 용도의 포스팅은 계속 저 제목으로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 중입니다. :]
대략 여기까지 6월분.

무지개집의 앨리스
가노 도모코 지음, 장세연 옮김 / 손안의책(사철나무)
나의 점수 : ★★★

-한 권 더 봤으니 이젠 마음을 굳혀야겠는데...이 단편집은 명백히 전편보다 낫다는 인상을 줍니다. 각별히 괜찮았던 것은 [무지개집의 앨리스]와 [거울의 집의 앨리스]. 그런데 이치무라 아리사의 캐릭터는 아직까지 위태위태합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존재 의의가 좀 엷습니다. 확실한 존재감을 가지는 캐릭터로 하기에는 뭔가 좀 부족하고, 대낮의 유령 같은 속삭임을 연기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말해 버렸습니다. 아무래도 실패라고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은데요. 특히 [환상의 집의 앨리스]는 그냥 비웃깁니다.
[무지개집의 앨리스]가 좋았던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테고(애초에 보았던 것이 이 단편 하나뿐이라면, 이 단편집을 줄줄이 읽고 있는 것보다 더 즐겁게 읽었을 겁니다), [거울의 집의 앨리스]가 좋았던 이유에는 다소 설명이 필요할 지도 모르겠는데-무엇보다, 저는 유리아의 캐릭터가 아리사에게 없는 것을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고로, 아리사는 좀 찜찜하지만 유리아는 좋습니다.
사실 제일 할 말이 많은 것은 책의 디자인인데...대체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어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별로 표지 운이 없는 책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일본어 원서 단행본도, 문고판도 썩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네요.

다이디타운
F. 폴 윌슨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나의 점수 : ★★★★

-근래 읽은 것들 중에는, 다른 걸 떠나서 그 책이 주는 '재미'의 강도가 좀 경이로운 것들이 끼어 있습니다. 이 [다이디타운]도 그 중 하나인데, 셰리 홀먼의 [도둑맞은 혀]나 헤닝 만켈의 [리가의 개들] 정도의 빠르기로 페이지가 휙휙 넘어갑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아는 작가란 정말이지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장르를 넘나드는 것도 좋고, 장르에 속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좋고, 장르 규칙 안에서 독창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온갖 장르 클리셰를 빠삭하게 꿰고서, 줄거리 요약의 첫 문장을 읊는 것만으로 팬들을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 수 있는 것 역시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처럼 재미있다면! 실제로 제 주위 사람들은, '미래거대도시의슬럼에있는허름한빌딩사무실에서아내에게버림받은탐정이진할로우의클론을만나' 까지만 말했더니 전부 배를 잡고(혹은 미간을 부여잡고) 쓰러지며 "나 그 책!" 이라고 외치던데요. :] 모 님, 덕분에 잘 봤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런 멋진 책을 공짜로 얻기까지 하다니 과연 올해는 건강만 빼고는 뭐든 잘 풀리는군요.
그나저나 진 할로우...
...여러 가지 감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무섭다. 아니, 다시 보니 진짜로 무서워. 무서울 정도로 남자답다!
Gwen Stefani as Jean Harlow (in [The Aviator]
물론 이쪽도 다른 의미에서 무서움.


메이즈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나의 점수 : ★★★

-언젠가 막투횽이 말했습니다. "온다 리쿠는 책덕 낚는 법을 알아. " 저는 온다 리쿠에게 더 이상 낚이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사람의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낚시작가라고 정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낚시는 성공적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서, 어떨 때는 기분좋게 낚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낚이고서 기분이 더러워지기도 하며, 또 어떨 때는 낚이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고 도망치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한다면 그렇게까지 좋은 작가리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이고, 어떻게든 안간힘을 써서 국가공인변명사 2급 자격증을 남용해 보자면 '꿈'의 속성이란 원래 자신에게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니까, 라는 얘기까지는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메이즈]는...처음부터 칸바라 메구미神原恵弥라는 캐릭터에 낚이느냐가 이 작품의 전부를 결정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예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저는 이 칸바라 메구미라는 캐릭터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아 심통이 났고, 작품의 다른 부분-'두부'에 대한 미츠루의 가설-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 칸바라 메구미의 설정을 듣고, 저는 그런 커다랗고 인상 나쁜 중년 아저씨가 여자 말투를 쓴다면 나름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비록 모 횽은 이 '여자말투' 설정을 듣고 "야, pathetic 하다" 라고 말했지만...여튼, 간단히 말해-별로 좋지 않은 비유 같기는 한데-상상한 건 무밍파파인데 나온 건 D백작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한 마디로, 이 칸바라 메구미 너무 징그러!

...곤란합니다. 이래서는. 다음 권을 봐 낼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튼 마음에 든 캐릭터는 중간에 잠시 언급된 미츠루의 아자부 출신 할머니밖에 없습니다. 문장마저 이래서야 헌책방밖에 갈 곳이 없습니다. 이게 작가 탓인지 번역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 작가가 '공포에 떨며 말했다' 같은 문장을 써도 되는 겁니까? ;ㅁ; 처음 본 순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에 샘플로 나왔던 문장 같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아니, '저런' 문장이 나온 게 아니라 '저 문장' 이 나온 것만 같은 확신마저 들었다니까.

그리고 이건 작가의 단순한 착각인지 번역오류인지 제가 알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이 있는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엄청난 명문가 출신에 곧 무시무시하게 높은 지위에 오를 쉰 살의 남자'라는 건 대체 뭘 말하는 겁니까? 현대에 와서야 왕족이 아닌 이상 50살까지 높은 지위에 못 올랐으면 그 다음에도 못 오르는 거 아닙니까? OTL

여담이지만 아마존 재팬에서 발견한 [메이즈]의 표지는 너무 흉악해서 도저히 여기 올려놓고 싶지 않습니다. 번역본의 모양이 원서와 비교해서 이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느낀 건 오랜만입니다. 책끈 색깔도 표지와 맞췄고, 예쁘더군요.

쓸쓸한 사냥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나의 점수 : ★★★

-[메이즈]와 이 [쓸쓸한 사냥꾼] 두 권을 나란히 사고, 거의 두 달을 안 읽고 버텼습니다. 정말로 손이 안 가더라고요. 둘 다 '이제는 안 보겠다' 고 선언한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고, 딱히 재미있어 보여서 보려고 했다기보다는 번역본을 '계절감각으로 먹듯이' 즉, 첫물 과일이나 생선을 별 맛도 없이 '먹을 때가 됐으니까 먹는 기분으로' 읽으려고 했던 탓도 있습니다. 나름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뒤떨어지고 말았군요. :D

똑같이 별 셋을 줬지만, 이쪽이 [메이즈] 보다는 낫습니다. [네 탓이야] 이야기를 할 때 사노 요의 [완전범죄연구]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쓸쓸한 사냥꾼]에서는 어느 정도 저 단편집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수록된 순서대로 읽었을 때 처음 두세 편은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년취향-이제 이 말에는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을 것 같은데-이 전면에 부각된 단편집입니다만 최소한 이 '하나뿐인 불효막심한 손자놈'은 지금까지 본 미야베 소년 중에서 긍정하기가 제일 쉬운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다른 단편들-특히, "말없이 죽다"와 "일그러진 거울"-에 비해 표제작의 퀄리티가 너무 떨어집니다. 단편집의 제일 끝에 이런 작품을 배치하면 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게다가 이 이야기가 [모방범]의 원형이라는 건, 대체 어쩌다가 나온 이야기입니까? 작가 본인의 말입니까? 아니면 그냥 모방범 이야기라서입니까? 모방범 이야기라서 전부 같은 거라면, ...말을 말죠. 찰랑찰랑하고 들기 쉬운 책 자체의 모양이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뒤표지에 씌어 있는 저 말이 참 기분을 착잡하게 하는군요. 물론 표지 그림은 논외입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한국 출판계에서는 소설책 표지에 사진을 쓰는 걸 대체 왜 그렇게 금기시합니까?

by euphemia | 2008/07/08 00:34 | Dear Detective! (추리) | 트랙백 | 핑백(1)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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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Trivia : 해리 터틀도브.. at 2008/07/10 20:45

... 철회한 것은 아닙니다. 다시 읽어도 이 책은 제 취향에는 지나치게 소년 지향으로 느껴지고, 그 점이 좀 우스꽝스러울 때도, 견디기 힘들 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이디타운]에 '자신이 무엇을 쓰는지 정확히 알고 있는, 장르에 빠삭한 작가의 매력' 이 있다고 평가한다면 이 [비잔티움의 첩자]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를 해 줘야 하지 않을까 ... more

Commented by 동굴곰 at 2008/06/07 03:57
저는 한창 온다 리쿠 책이 쏟아질 때 당시 신작이었던 <라이온 하트>를 밟은 다음 두 번 다시 이 작가 책은 돈 주고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euphemia님의 포스팅을 보고 다행히 제 취향이 그렇게까지 마이너하지는 않구나, 안심해도 좋은 걸까요 /반웃음
Commented by euphemia at 2008/06/08 18:17
낚였다는 비명이 의외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서, 그렇게까지 마이너한 처지는 아닌 것 같기도 해요. ㅠ_ㅠ 이 사람이 즐겨 다루는 소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계속 읽어도 좋을 텐데,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제가 싫어하는 게 있다면 청춘이라서...
Commented by jen at 2008/06/08 15:31
맞습니다, "책덕 낚는 법"을 압니다, 온다 리쿠는. ㅠㅠ
근데 저는 삼월은...에서 낚여 펄떡거리다 그 후에 갖은 경고등을 무시하며
혹시나가 역시나임을 확인하면서 메이즈까지 온 거였어요. 흑흑.
(윗분도 말씀하신 <라이온하트>는 아아 정말이지...그 때라도 멈췄어야 했어요. ㅠㅠ)

정말 메이즈는 관건이라 할만한 칸바라 메구미가 정말로 무매력을 지나 비호감을 살짜기 품게 만드는 캐릭터라 사실 황당하기까지 했습니다.
Commented by euphemia at 2008/06/08 18:20
저도 역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발단이었고, 바로 [밤의 피크닉]을 읽었는데 여기서 벌써 수상함을 감지, 그리고 또...그리하여 위기감을 느낀 건 [네버랜드] 때였고, 그 때는 재미있게 보면서도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비위가 상해서 역겹사死할지도'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이온하트]는...다행히도 읽지 않았습니다. ^_^;

번역 탓이 어느 정도는 있지 않을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지만...그렇다고 본질이 변할 것 같지는 않아서요. 저는 [클레오파트라의 꿈]을 볼까 말까 잠시만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ㅠ_ㅠ
Commented by 모르는고양이 at 2008/06/08 19:18
역겹死....끅끅거리면서 웃게 만드시는군요;ㅂ; 아놔
Commented by jen at 2008/06/08 23:16
클레오파트라의 꿈은 저도 고민하다 아아 아니야 아니야~ 하며 도리질치고 있은지 한참인데요. ㅠㅠ
게다가 이 와중에 <초콜릿 코스모스>까지 갖고 고민한다면 저도 참 저겠지요? 흑흑. 말려주시어요.
이러다 결국 사들고는 마지막 장 덮으면서 책을 손에 받쳐들고 하늘 쳐다보며 으허허헝 울부짖게 될까봐 걱정입니다. ㅠㅠ
Commented by euphemia at 2008/06/10 14:15
저도 실은 [초콜릿 코스모스]를...
...말릴 처지가 못 됩니다. 아아아...;ㅁ; 이래서 내가 늘 헌책방의 좋은 고객이지...
Commented by keira at 2008/07/02 21:55
다이디 타운은 판타스틱에 연재가 되어 다 봤기 때문에 사야 하는지 고민이 되는군요. 좋은 작품이지만 그냥 나중에 잡지 연재분을 뜯어 보관할까 싶기도 하고 판타스틱은 한 권 한 권이 훌륭한 책 수준이니 그런 식으로 훼손할 바에는 차라리 (받는 곳이 있다면) 도서관에 넘기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아직은 껴안고 있을 만 하지만 얇은 것도 아닌 잡지를 어디다 계속 보관할까 걱정이 됩니다.
그런데 전 솔직히 진 할로의 매력을 모르겠어요오오오오... 아무리 봐도 예쁜 줄 모르겠는데 어쩌다 복제까지 당하는 기구한 운명이 되었을까요.
Commented by euphemia at 2008/07/04 17:31
판타스틱, 표지에 늘 좀 동의하기 힘듭니다. 집에 여러 권 두면 부피의 압박입니다. 그러나 시마다 마사히코가 나오기 때문에 이번에는 사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번역자분과 흑맥주 먹다가 얼떨결에 이런 좋은 책을 얻었지만, 아니더라도 사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진 할로우 : '원형' 이기 때문이겠지요.
Commented by 알겠어요 at 2008/07/03 09:05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온다 리쿠를 "빛의 제국"으로 먼저 접하고, 꽤 괜찮다고 생각했거든요. 그후에 아주 우연히 "밤의 피크닉"을 읽게 됐는데 이것도 그럭저럭 재미있게 읽었구요. 그런데, 그 후 블로그의 평이나 서평들을 보니 작품에 따라 상당히 평이 갈리는 작가인 모양이더군요. 그래서 좀 망설이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euphemia at 2008/07/04 17:36
어서 오세요. :]
저는 저 두 권을 다 읽지 않았습니다만, 멋대로 주변의 풍경에 근거하여 추리를 펼쳐 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주변에서 얻어들은 감상들을 종합해 보면, 저 두 권이 재미있있다면 앞으로도 순조로우실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삼월은 붉은 구렁을] 로 시작해서 [밤의 피크닉]에서 좀 짜게 식었고 [네버랜드]에서 지옥으로 떨어졌는데, 아무래도 '재미'와 무관한 다른 사항에 많이 좌우되는 작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한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제가 도저히 유쾌하게 볼 수 없는 방향의 책들이 확실한 다수파인 것 같고요. ;_;
저는 이제 딱 한 권만입니다. [초콜릿 코스모스] 다음에는 안 볼 겁니다. 진짜로!
Commented by 알겠어요 at 2008/07/07 16:04
근데 사실 "밤의 피크닉" 읽을 때는 뭔지모를 달달함이랄까 아무튼 설명못할 무언가가 좀 걸리긴 했어요. 일본 소설 읽을때 흔히 느껴지는 기분이라 그냥 넘겼는데, 그 정도가 심해진다면 좀 문제가 있겠습니다 -_-;;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꼭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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