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4일
[ABE] [칼과 십자가Madatan]와 [횃불을 들고The Lantern Bearers]
-피터 카터Peter Carter의 [칼과 십자가Madatan](이 제목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설명하겠습니다)를 무언가와 함께 묶는다면 그 '무언가'는 역시 로즈메리 서트클리프Rosemary Sutcliff의 [횃불을 들고The Lantern Bearers]가 되는 게 맞을 겁니다. 시기상으로는 300년 정도의 차이가 있습니다만 양쪽 다 애들 책에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진지한 인간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습니다-한 쪽은 매우 지적이며 다른 한 쪽은 매우 종교적입니다. 물론 이 표현은 종교가 지적이지 않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략 저 시대 언저리부터 1000년간 종교와 지성이 동일시되던 시대니까 더더욱. [칼과 십자가]의 전체 주제가 무척이나 종교적인 데 비해 [횃불을 들고] 에서는 종교란 언뜻 지나가는 문제로만 언급될 뿐입니다-즉 이렇습니다 : 착한 종교인은 좋은 사람입니다. 근데 그 사람은 종교인이 아니어도 착한 사람이었을 겁니다.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두 주인공의 인생이 외부의 개입으로 산산이 부서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칼과 십자가]의 마다Madaah(이 이름은 켈트 어로 '여우' 라는 뜻입니다. 제목의 'Madatan'은 '작은 여우' 라는 뜻이고요)는 갑자기 들이닥쳐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바이킹에게 노예로 끌려갑니다. [횃불을 들고]에서는 주인공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아퀼라가 아버지의 농장에 머물고 있을 때, 색슨 족이 들이닥쳐 아버지와 농장 식구들을 죽이고 여동생을 납치해 갑니다. 아퀼라 자신도 2차로 들이닥친 주트 족의 노예가 되고요. [칼과 십자가]의 이후 내용은 마다의 세계가 더 넓어지면서 그가 또 무엇을 잃어버리는가 하는 데 집중되어 있고 [횃불을 들고] 에서는 잃어버린 것을 어떤 형태로건 되찾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서 분명히 이야기 자체의 분위기는 [칼과 십자가] 쪽이 더 어둡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둘 중 어느 쪽에 더 짙은 비관주의가 깔려 있다고 해야 할까에 대해서는 잠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마다의 세계에는 '우리 편' 이란 없습니다. 이 이야기의 상당 부분은 마다가 그 사실을 학습하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가 이 이야기를 ABE 전집이 보여 주는 '인생의 쓴맛'의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는 이유입니다. ) 마다는 분명히 머리가 좋고 언어적 재능이 뛰어납니다. 다만 순진할 뿐. 그리고 이 이야기는 세계에서 순진함이란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차근차근 잘 보여 줍니다. 그가 우연히 입 밖에 낸 켈트 족의 주문의 힘을 과신한 바이킹들은 그를 (반신반의하면서도) 두려워하게 됩니다. 후에 바이킹의 배가 잉글랜드 해역에서 난파당했을 때, 그는 이전에 우연히 얻은 십자가 때문에 살아납니다. 눈 앞에는 해안에 떠밀려 온 조난자를 이교도 바이킹이라는 이유로 고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다는 십자가의 힘을 의식하고 이대로 크리스트 교인인 척 행동하기로 합니다.
교회에 안주할 뻔 했던 마다의 인생은, 교회가 그를 스파이로 쓰려 했을 때 또다시 균열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불태우는 것이 비단 이교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또 박살이 납니다. 교회란 결국 선의 편도 무엇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마다는 '동포 크리스트교도' 중에서 자기가 본 가장 구체적인 악, 영주의 아들을 살해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버지와도 같았던 엘드레드Aeldred 수도사를 잃고 맙니다. 그는 절망에 차서, 그 전까지 애지중지하던 아름다운 필사본들을 살해당한 엘드레드의 화장용 장작으로 불태운 후 뛰쳐나와 이리저리 떠돌다 산적 무리의 두목이 됩니다.
어둡습니다. 지나치게 어둡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마지막에 구원받습니다. 죽어가는 마다를 구해 준 은둔자는 그 어느 수도사보다도 크리스트 교 교리의 본질에 가까이 간 사람입니다. 마다는 처음으로 인간의 불완전성을 똑바로 보고, 죄를 사하는 신의 진짜 의미를 깨닫습니다. 저는 크리스트 교인이 아니라서 '참회'가 그 종교에서 어째서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으로 그 중요성과 의미를 이렇게 잘 구현한 것도 드물리라고는 생각합니다.
아퀼라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닌니아스 수도사가 중요 인물로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는 그냥 좋은 사람일 뿐입니다. 물론 아퀼라는 그에게서 온정 어린 도움을 수 차례 받습니다만, 제 기억에 따르면 닌니아스가 수도사가 자신의 신앙을 강렬하게 어필한 것은 딱 한 번으로 아퀼라에게 그의 원수를 '용서하라' 고 강권했을 때입니다. (사실 용서할 수밖에 없었지요. 죽었으니까.) 이것은 본문에도 나와 있었다고 기억합니다만 아퀼라는 용서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은 것이 아닙니다. 그냥 속이 텅 비어 버렸을 뿐. 기억하시는지요? 그래서 그는 마음의 빈 틈을 메꾸기 위해 충성할 상대를 찾았고, 그게 아버지가 섬기던 암브로시우스Ambrosius Aurelianus였습니다. 딱히 그가 정치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어서 택한 것도 아니고, 한 자리 얻을 수 있어서도 아닙니다. 그는 별 마음도 없이 그냥 주군이 시키니까 네스와 결혼했습니다. (둘 중 하나를 고른 이유라면 네스가 여동생을 닮아서겠지만...-_-;) 책 한 권 내내 이 아퀼라라는 남자는 너무 괴로움을 당한 나머지 동력이 끊어져 버린 선풍기 같은 상태로, 밖에서 바람이 불거나 손가락을 집어넣어 뱅글뱅글 돌리면 회전하기는 합니다만 스스로 움직이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이야기는 다시 책 앞 부분의 불타는 농장으로 돌아갑니다. 로마 군단이 브리튼에서 떠나던 날. 살해당하는 그리스인 가정교사와 불타는 책 두루마리들. 아퀼라가 끝없는 전투에서 발견한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문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즉 그 끊임없는 전투는 지금까지 이룬 것을 뒤엎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국가' 라는 개념이 민족 혹은 씨족 밖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아직까지도 습득하지 못한 개념이지요.) 그는 로마의 군인이었지만, 브리튼 인입니다. 아퀼라의 공백 상태는 그가 하고 있는 싸움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효과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작가의 장치입니다. 아퀼라의 아내 네스는 색슨 족입니다. 보티건의 세 아들들이 귀순해 왔을 때 암브로시우스는 우호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지켜야 할 것은 함께 살기로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모양을 이루는 브리튼이라는 나라입니다.
[횃불을 들고]는 결말에서 극적인 성취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전쟁은 끝없이 계속되는 채로 시간은 사람들을 닳게 합니다. [칼과 십자가]의 일본어판 제목인 [끝없는 싸움果てしなき戦い]은 [횃불을 들고] 쪽에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일 지도 모릅니다. 암흑이 덮쳐오면 남는 것은 오직 그들이 무엇 때문에 싸웠는가입니다. 지키지 못해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로마 군단이 떠나가 버린 브리튼의 바닷가를 비추던 루투피에Rutupiæ의 등대처럼.
Trivia
1. 로즈메리 서트클리프의 책들은 번역도 되었고, 이것저것 구해 읽어 봤지만 피터 카터 쪽은 전혀 정보가 없었는데, 이번에 조사하면서 [Children of the Book]이란 책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17세기 비엔나 공성전을 배경으로 하는 진지하고 어두운 책이라는군요. 표지나 제목이나 정말 읽고 싶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ㅠ-
2. 수차 얘기했지만 [횃불을 들고]에서 보티머Vortimer의 죽음은 너무나 탐미했다고 생각됩니다(...)
3. 두 권 다 좋아하는 책들이라 지나치게 쾌락한 거 맞습니다.
4. 카터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는 진짜 없습니다. 모 저널에서 카터의 책에 대한 글을 하나 찾았고 저는 지금 [REPRESENTATIONS OF ANGLO-SAXON ENGLAND IN CHILDREN'S LITERATURE] 라는 누군가의 96페이지짜리 석사논문을 읽을까말까 하는 중입니다. ㄱ-
두 작품은 공통적으로 두 주인공의 인생이 외부의 개입으로 산산이 부서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칼과 십자가]의 마다Madaah(이 이름은 켈트 어로 '여우' 라는 뜻입니다. 제목의 'Madatan'은 '작은 여우' 라는 뜻이고요)는 갑자기 들이닥쳐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바이킹에게 노예로 끌려갑니다. [횃불을 들고]에서는 주인공 마르쿠스 플라비우스 아퀼라가 아버지의 농장에 머물고 있을 때, 색슨 족이 들이닥쳐 아버지와 농장 식구들을 죽이고 여동생을 납치해 갑니다. 아퀼라 자신도 2차로 들이닥친 주트 족의 노예가 되고요. [칼과 십자가]의 이후 내용은 마다의 세계가 더 넓어지면서 그가 또 무엇을 잃어버리는가 하는 데 집중되어 있고 [횃불을 들고] 에서는 잃어버린 것을 어떤 형태로건 되찾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서 분명히 이야기 자체의 분위기는 [칼과 십자가] 쪽이 더 어둡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둘 중 어느 쪽에 더 짙은 비관주의가 깔려 있다고 해야 할까에 대해서는 잠시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둡습니다. 지나치게 어둡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쨌든 마지막에 구원받습니다. 죽어가는 마다를 구해 준 은둔자는 그 어느 수도사보다도 크리스트 교 교리의 본질에 가까이 간 사람입니다. 마다는 처음으로 인간의 불완전성을 똑바로 보고, 죄를 사하는 신의 진짜 의미를 깨닫습니다. 저는 크리스트 교인이 아니라서 '참회'가 그 종교에서 어째서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으로 그 중요성과 의미를 이렇게 잘 구현한 것도 드물리라고는 생각합니다.


410년경의 Roman-Britain 지도. 원본(1111X1497)
이야기는 다시 책 앞 부분의 불타는 농장으로 돌아갑니다. 로마 군단이 브리튼에서 떠나던 날. 살해당하는 그리스인 가정교사와 불타는 책 두루마리들. 아퀼라가 끝없는 전투에서 발견한 '그가 지켜야 할 것'은 '문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즉 그 끊임없는 전투는 지금까지 이룬 것을 뒤엎지 않으려는 노력입니다. 좀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국가' 라는 개념이 민족 혹은 씨족 밖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아직까지도 습득하지 못한 개념이지요.) 그는 로마의 군인이었지만, 브리튼 인입니다. 아퀼라의 공백 상태는 그가 하고 있는 싸움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를 효과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작가의 장치입니다. 아퀼라의 아내 네스는 색슨 족입니다. 보티건의 세 아들들이 귀순해 왔을 때 암브로시우스는 우호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가 지켜야 할 것은 함께 살기로 결정한 사람들입니다. 모양을 이루는 브리튼이라는 나라입니다.
[횃불을 들고]는 결말에서 극적인 성취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전쟁은 끝없이 계속되는 채로 시간은 사람들을 닳게 합니다. [칼과 십자가]의 일본어판 제목인 [끝없는 싸움果てしなき戦い]은 [횃불을 들고] 쪽에 더 잘 어울리는 제목일 지도 모릅니다. 암흑이 덮쳐오면 남는 것은 오직 그들이 무엇 때문에 싸웠는가입니다. 지키지 못해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로마 군단이 떠나가 버린 브리튼의 바닷가를 비추던 루투피에Rutupiæ의 등대처럼.
Trivia
1. 로즈메리 서트클리프의 책들은 번역도 되었고, 이것저것 구해 읽어 봤지만 피터 카터 쪽은 전혀 정보가 없었는데, 이번에 조사하면서 [Children of the Book]이란 책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17세기 비엔나 공성전을 배경으로 하는 진지하고 어두운 책이라는군요. 표지나 제목이나 정말 읽고 싶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ㅠ-

3. 두 권 다 좋아하는 책들이라 지나치게 쾌락한 거 맞습니다.
4. 카터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에는 진짜 없습니다. 모 저널에서 카터의 책에 대한 글을 하나 찾았고 저는 지금 [REPRESENTATIONS OF ANGLO-SAXON ENGLAND IN CHILDREN'S LITERATURE] 라는 누군가의 96페이지짜리 석사논문을 읽을까말까 하는 중입니다. ㄱ-
# by | 2007/12/14 11:43 | MidnightFeast (어린이책) | 트랙백 | 핑백(1) | 덧글(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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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하는 저나 [어머니는 마녀가 아니에요]가 1위가 될 거라는 건 알고 시작하는 일이니까요. 재미있어지는 건 2위부터의 결과일 겁니다. 제가 읽은 범위 안에서 꼽자면 [칼과 십자가], [여우굴], [형님], 그리고 이 [그때 프리드리히가 있었다] 정도가 순위권 후보가 아닐까 싶네요. ^_^; 어릴 때의 저는 확실히 [칼과 십자가]나, [어머 ... more
에이브 검색으로 들어왔다가 잘 읽고 갑니다. ^^
읽다보니까 선집 안에 같은 작가의 책이 있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고무줄 놀이를 빼먹고 맘에 드는 작가의 책을 모아서 또 읽고 또 읽고는 했어요.
그런데, 칼과 십자가는 즐거운 마음으로 몇번이고 읽을 수 있었는데 카터의 다른 책 검은 램프(이게 탄광 얘기 맞죠?)는 너무 어두워서 읽기가 힘들더라구요. 결국 검은 램프는 제가 ABE 시리즈 중에 제일 마지막까지 안 읽은 책 중 하나로 남더군요. 다른 하나는 어째서인지 우리 삼촌이었어요;
여담이지만 [횃불을 들고]의 묘사가 에이브판에서 많이 잘려나갔다는 얘기를 전에 쓴 적이 있는데 [칼과 십자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저 글에 인용된 부분을 보니 상당히 거창한 심리묘사가 있는데 해당되는 부분을 찾을 수가 없어요. OTL
이오냥 / 가능한 한 하루에 한 권씩만 읽겠다고 스스로 제동을 걸었었어요 =_=; 가능하면 순서대로 읽겠다고도. [큰숲 작은집]을 읽고선 [초원의 집]을 마지막까지 아껴놨는데, [초원의 집]이 결국 [큰숲 작은집] 보다도, 이전에 읽은 [플럼 강 기슭에서] 보다도 재미없다는 걸 알고 좀 좌절...
[검은 램프]는 제가 못 읽은 부분인데, 탄광 얘기였나요? 19세기 노동운동...이랄까, 러다이트 얘기인 줄 알고 있었는데... 말씀하신 다른 하나가 유리 코리네츠의 [삼촌 생각]이라면... 저의 '그 책을 꺼렸던 이야기'를 조만간 또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_=; (네, 꺼렸어요)
soulfood / 김이 오르는 삶은 콩과 꿀을 바른 갈색 보리빵. :D 저도 가끔 그 생각 해요. metheglin이란 건 마셔본 적이 없어서 맛을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꿀이 들었다니 맛있겠지 뭐...( -_-)
그런데 <칼과 십자가>의 작가가 피터 카터였군요(...어이;) 전 ABE는 없고 ACE88이 있었기 때문에, 피터 카터라고 하면 <운명의 아이들>의 작가로 기억합니다. 기억도 희미하고 수중에 책이 없어 확실한 거라고는 '이슬람 문명에 침공당하는 유럽 성곽도시가 배경'이란 정도인데, 아무래도 이게 언급하신 <The Children of the Book>이 아닐까 싶습니다 <- 콘스탄티노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
역사물이라서 몇 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묵직하게 명치를 때리는 많이 아픈 책이었어요. 특히 결말이...(잠시 먼산)
(ACE88에는 피터 카터의 <반노예선>도 있습니다만, 이건 정말 암울의 극치라서 한 번 읽은 다음 기억에서 지워버린 걸로 기억되는군요...)
[Children of the Book](방금 본문을 고쳤어요. 표지에 있는 대로 첫번째 The는 빠지는 게 맞습니다 ㅜ.ㅠ)의 번역본이 있었군요. OTL ACE88 쪽은 정말 소수밖에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두 전집을 합친다면 잘하면 [어린이책의 역사] 2권 분량에 등장한 책들을 전부 커버하겠네요. 역시나 페기 모건에 의하자면 젊은 예니체리 티무르, 빨리 군에 입대하고 싶어하는 폴란드 소년 스테판, 비엔나의 소녀 안나의 이야기라는데 맞나요? 이 언저리 이야기라면 근래 [바로크 사이클] 에서 본 것 같은데...빨리 입수 루트를 찾아 봐야겠습니다.
[반노예선]이라면 아마 [The Sentinels]...아니, 한국에도 이렇게나 많이 번역되고 있는 작가인데 어째서 인터넷에 피터 카터 정보는 이렇게 찾아보기 힘든 거죠? ;ㅁ; 저만 찾기 힘든 건가요, 아니면 이 사람 독일과 한국과 일본에서만 읽히는 건가요?
저처럼 쉬운 인간은 대략 몇 가지 단어들만 얼기설기 던져주어도 그 단어에 반응하면 영화고 책이고 반성의 기미도 없이 걸려듭니다만....17세기 비엔나 공성전이라니..보고싶잖아요. 책표지의 그림을 보니 저 유명한 성곽이 보이는군요. 두근두근.
그나저나 (많은 한국인들이 아직까지도 습득하지 못한 개념이지요.)이라는 말씀에 애석하게도, 절절이 공감합니다.
비밀글 / 단순히 [Madatan]이 비인기 종목인 것 같기도 하고...에이브 전집 뒤의 작가소개보다 더 깊은 내용은 잘 없는 것 같기도 하고...:<
Armand / 단순한 서비스...^ㅁ^; 제가 갖고 있는 로즈마리 서트클리프의 군단 3부작 원서들에는 앞부분에 지도가 들어 있더라고요. 저는 지도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지만(솔직히 말하자면 싫어합니다-_ㅜ 아무 정보도 없이 시작한 책 첫머리에 지도가 그려져 있는 걸 보면 거기서부터 싫은 생각이 스물스물 들어 버릴 정도로...저택 평면도나 동네 지도 정도는 좋습니다만) 혀를 깨물 듯한 지명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신기한 기분이 들어요.
위에도 썼지만 근래 본 중 비엔나 공성에 대한 가장 뿜는(그리고 강렬한) 묘사는 [바로크 사이클]에서였습니다. 혹시 보실 생각이 있으시면 차후에 대여하겠습니댜. (이렇게 피해자를 늘린다...)
아카리 / 어서 오세요. ^^; 저도 [횃불을 들고]가 제일 좋아요. 지적이고 씁쓸하면서도 사소한 디테일 하나하나가 참을 수 없이 로맨틱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완역본이 나오지 않으려나요? "흔해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사과란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로구나..." 라고 말하는 암브로시우스라든지 에이브판에는 빠진 게 많은데. (...)
[칼과 십자가]의 그 고문장면은, 나이가 들어 다시 봤더니 다행히도 앞부분의 내용들만큼 뼈아프지는 않았습니다. 여전히 참 상징적이고 슬픈 장면이라고는 생각해요. -_ㅜ
Armand / 와아 ^ㅁ^//
금년 최악의 표지감이군요.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2751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