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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이름 100제 : 미라벨Mirabelle

-그림 말고 다른 방법으로 시도해봅니다만...어째 팬픽이군요. 홀딱 반했으니 어쩔 수 없으려나...:]
사탕 먹다 입천장 베고 생각해낸 것 맞습니다. ㄱ-

Mirabelle

눈앞이 새하얘지고 풍경이 흔들리는 괴로움은 편두통 환자만의 것이 아니라 여름이면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기에 나는 여름을 사랑한다. 나는 가슴 부분에 자주빛 서양자두 물이 점점이 얼룩진 드레스를 입고, 빛으로 새하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몇 년 전의 과일 물이 아직 지워지지 않은 흰 드레스는, 너무 세탁해서 처음엔 버석버석해졌다가, 그 후로는 되려 닳아서 부드러워졌다. 빨랫줄에서 걷은 식탁보를 한 아름 끌어안고 맨발로 서서 이웃집 마당에 자라고 있는 과일나무를 바라보았다. 내 드레스 가슴의 보라빛 얼룩은 몇 년 전의 과일 절도의 훈장이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손 쓸 새도 없이 말라붙어 손가락을 끈적끈적하게 만들던 서양자두 열매의 즙은 아라비안 나이트의 환상처럼 달았다. Mi-ra-belle, 내 이름의 어감처럼 달았다.
내 머리카락은 밤껍질처럼 반들거렸다. 내 피부는 아몬드처럼 검었다. 흰 드레스는 거즈만큼 나달나달했다. 잠깐,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건가? 내가 끌어안고 있는 식탁보는 어머니가 거칠게 수놓은 물건이 아니었던가? 아니었다. 비밀스런 부적을 한 귀퉁이에 누벼 넣은, 내가 꿰맨 식탁보였다. 한 번도 식탁에는 올라간 적 없고 서랍 속에서 잠들어 있던 물건. 하지만 왜 새삼스레 이걸 꺼냈단 말인가? 전쟁 중에 식탁보가 웬 말인가? 그제야 기억이 났다. 이걸로 옷, 옷을 만들려고. 딸아이에게 내가 입었던 것 같은 드레스를 만들어 주려고. 제대로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어떻게든 해 봐야지.
그 드레스를 입고 있던 시절, 어쩌다 얻어먹은 카시스 과즙으로 만든 사탕에서는 어렴풋이 피냄새가 났다. 깜짝 놀랐다. 착각인지 확인하려고 사탕을 입천장에 올려 붙이고 숨을 들이마셨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들이마셨다. 점점 진해지는 피냄새. 물론 착각이었다. 입천장이 엉망진창으로 사탕에 베어 있었을 뿐이었다. (사탕은 의외로 위험한 물체다) 하지만 최초의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이제는 알고 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순간 카시스 열매는 피를 흘리는 것이다. 열매든 그 즙이든 사탕이나 잼 같은 가공품이든 카시스에는 그 피냄새가 배어 있다. 그러니까 당신은 다친 게 아니다. 안심해라. 하지만 입 안의 점막으로부터 그 피냄새를 느낀 사람은 누구나, 너무 많이 달렸을 때나 기침을 너무 많이 했을 때에 얼핏 느꼈던 것과도 같은 내상의 공포에 순간적으로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사람의 피는 사람으로부터 흐르는 것이고 부모자식간의 피투성이로 연결된 기억은 좀처럼 지워지는 것이 아니기에 나는 내 아들의 이름을 카시스라고 지은 것이다. 열매들은 모두 나무에서 떨어져나올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저절로 여물어 떨어진 열매들에게서는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막내딸은 내게서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떨어진 것이 아닌지? 내가 나무고 그 아이가 열매인 것이 아니라, 내가 나무라면 그 아이도 나무이고 우리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었다. 우리는 단지 같은 종일 뿐이었다. 그래서, 같았다. 나는 그 애에게서도 피냄새가 나기를 바래서 프랑부아즈(나무딸기)라는 이름을 붙인 게 아닐까? 재배 딸기, 그 순진함을 가장한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물건을 제외하면 모든 딸기에서는 피냄새가 난다. 그 아이는 나를 증오한다. 좋다. 아무런 감상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 나도 그 아이를 증오하니까. 어쩌면 우리 둘 중 나무는 아무도 아닌 게 아닐까? 우리는 둘 다 악의라는 넝쿨에서 저절로 떨어져 내린 열매가 아닐까.
드레스는 큰딸 렌 클로드에게. 그 아이는 예쁘다. 전쟁 중이지만 예쁜 드레스도 필요할 게다. 하지만 프랑부아즈에게는 필요없다. 금새 과일 물로 얼룩지게 할 테니까. 그게 오렌지가 아니기를 빌어야지. 그 애는 내게 그런 짓을 하기에 충분한 악의를 가지고 있으니까. 상관없다. 오렌지 냄새는 내 정신을 흐트러 놓고, 이미 다른 누구의 죄를 가리지 못하도록 분별력을 빼앗아 갈 것이다. 내가 프랑부아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다. 내 의식은 결코 그 아이를 사랑하지 못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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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phemia | 2006/12/14 16:37 | Diabolo Menthe (창작)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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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12/15 13:1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euphemia at 2006/12/16 11:47
조안 해리스의 [오렌지 다섯 조각]에는 미라벨 다르티장이라는 캐릭터가 나오는데...네, 팬픽입니다. 제가 원래 미친년을 좀 좋아하거든요. (...)
Commented by 세온 at 2006/12/17 12:47
아아. 반할것 같아요.. 미라벨이 주격이 되는 글을 읽으니 왜이리 좋은지요;;
Commented by euphemia at 2006/12/19 12:10
여기 역시나 미라벨에 반하신 분이 또... ^^; 실은 전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의 DVD에 들어있던 교환일기처럼, 혹 미라벨 다르티장 앨범이 출판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하여튼 쓸모없고 예쁜 책 무지 좋아하는 이 인간...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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