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와 같은 용도의 포스팅은 계속 저 제목으로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 중입니다. :]
다이디타운F. 폴 윌슨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나의 점수 : ★★★★
-근래 읽은 것들 중에는, 다른 걸 떠나서 그 책이 주는 '재미'의 강도가 좀 경이로운 것들이 끼어 있습니다. 이 [다이디타운]도 그 중 하나인데, 셰리 홀먼의 [도둑맞은 혀]나 헤닝 만켈의 [리가의 개들] 정도의 빠르기로 페이지가 휙휙 넘어갑니다.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확실히 아는 작가란 정말이지 보물 같은 존재입니다. 장르를 넘나드는 것도 좋고, 장르에 속하지 않으려 애쓰는 것도 좋고, 장르 규칙 안에서 독창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온갖 장르 클리셰를 빠삭하게 꿰고서, 줄거리 요약의 첫 문장을 읊는 것만으로 팬들을 데굴데굴 구르게 만들 수 있는 것 역시도 좋은 작품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처럼 재미있다면! 실제로 제 주위 사람들은, '미래거대도시의슬럼에있는허름한빌딩사무실에서아내에게버림받은탐정이진할로우의클론을만나' 까지만 말했더니 전부 배를 잡고(혹은 미간을 부여잡고) 쓰러지며 "나 그 책!" 이라고 외치던데요. :] 모 님, 덕분에 잘 봤습니다. 정말 재미있었어요! 이런 멋진 책을 공짜로 얻기까지 하다니 과연 올해는 건강만 빼고는 뭐든 잘 풀리는군요.
그나저나 진 할로우...
...여러 가지 감상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단, 무섭다. 아니, 다시 보니 진짜로 무서워. 무서울 정도로 남자답다!
Gwen Stefani as Jean Harlow (in [The Aviator]
물론 이쪽도 다른 의미에서 무서움.
메이즈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나의 점수 : ★★★
-언젠가 막투횽이 말했습니다.
"온다 리쿠는 책덕 낚는 법을 알아. " 저는 온다 리쿠에게 더 이상 낚이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이 사람의 존재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낚시작가라고 정의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낚시는 성공적일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어서, 어떨 때는 기분좋게 낚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낚이고서 기분이 더러워지기도 하며, 또 어떨 때는 낚이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고 도망치기도 합니다. 독자에게 이런 경험을 선사한다면 그렇게까지 좋은 작가리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이고, 어떻게든 안간힘을 써서 국가공인변명사 2급 자격증을 남용해 보자면
'꿈'의 속성이란 원래 자신에게서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이니까, 라는 얘기까지는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메이즈]는...처음부터 칸바라 메구미神原恵弥라는 캐릭터에 낚이느냐가 이 작품의 전부를 결정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예측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저는 이 칸바라 메구미라는 캐릭터가 매우 마음에 들지 않아 심통이 났고, 작품의 다른 부분-'두부'에 대한 미츠루의 가설-은 상당히 마음에 들었습니다. 처음 칸바라 메구미의 설정을 듣고, 저는 그런 커다랗고 인상 나쁜 중년 아저씨가 여자 말투를 쓴다면 나름 매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만...비록 모 횽은 이 '여자말투' 설정을 듣고 "야, pathetic 하다" 라고 말했지만...여튼, 간단히 말해-별로 좋지 않은 비유 같기는 한데-상상한 건 무밍파파인데 나온 건 D백작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한 마디로,
이 칸바라 메구미 너무 징그러! ...곤란합니다. 이래서는. 다음 권을 봐 낼 자신이 없습니다. 아무튼 마음에 든 캐릭터는 중간에 잠시 언급된
미츠루의 아자부 출신 할머니밖에 없습니다. 문장마저 이래서야 헌책방밖에 갈 곳이 없습니다. 이게 작가 탓인지 번역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프로 작가가 '공포에 떨며 말했다' 같은 문장을 써도 되는 겁니까? ;ㅁ; 처음 본 순간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On Writing]에 샘플로 나왔던 문장 같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아니, '저런' 문장이 나온 게 아니라 '저 문장' 이 나온 것만 같은 확신마저 들었다니까. 그리고 이건 작가의 단순한 착각인지 번역오류인지 제가 알 수 없는 문화적 배경이 있는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엄청난 명문가 출신에 곧 무시무시하게 높은 지위에 오를
쉰 살의 남자'라는 건 대체 뭘 말하는 겁니까? 현대에 와서야 왕족이 아닌 이상 50살까지 높은 지위에 못 올랐으면 그 다음에도 못 오르는 거 아닙니까? OTL
여담이지만 아마존 재팬에서 발견한
[메이즈]의 표지는 너무 흉악해서 도저히 여기 올려놓고 싶지 않습니다. 번역본의 모양이 원서와 비교해서 이 정도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느낀 건 오랜만입니다. 책끈 색깔도 표지와 맞췄고, 예쁘더군요.
쓸쓸한 사냥꾼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나의 점수 : ★★★
-[메이즈]와 이 [쓸쓸한 사냥꾼] 두 권을 나란히 사고, 거의 두 달을 안 읽고 버텼습니다. 정말로 손이 안 가더라고요. 둘 다 '이제는 안 보겠다' 고 선언한 작가의 작품이기도 하고, 딱히 재미있어 보여서 보려고 했다기보다는 번역본을 '계절감각으로 먹듯이' 즉, 첫물 과일이나 생선을 별 맛도 없이 '먹을 때가 됐으니까 먹는 기분으로' 읽으려고 했던 탓도 있습니다. 나름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뒤떨어지고 말았군요. :D
똑같이 별 셋을 줬지만, 이쪽이 [메이즈] 보다는 낫습니다.
[네 탓이야] 이야기를 할 때 사노 요의 [완전범죄연구]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쓸쓸한 사냥꾼]에서는 어느 정도 저 단편집의 향기가 느껴집니다. 수록된 순서대로 읽었을 때 처음 두세 편은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년취향-이제 이 말에는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을 것 같은데-이 전면에 부각된 단편집입니다만 최소한 이 '하나뿐인 불효막심한 손자놈'은 지금까지 본 미야베 소년 중에서 긍정하기가 제일 쉬운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다른 단편들-특히, "말없이 죽다"와 "일그러진 거울"-에 비해 표제작의 퀄리티가 너무 떨어집니다. 단편집의 제일 끝에 이런 작품을 배치하면 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게다가 이 이야기가 [모방범]의 원형이라는 건, 대체
어쩌다가 나온 이야기입니까? 작가 본인의 말입니까? 아니면 그냥 모방범 이야기라서입니까? 모방범 이야기라서 전부 같은 거라면, ...말을 말죠. 찰랑찰랑하고 들기 쉬운 책 자체의 모양이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뒤표지에 씌어 있는 저 말이 참 기분을 착잡하게 하는군요. 물론 표지 그림은 논외입니다.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한국 출판계에서는 소설책 표지에 사진을 쓰는 걸 대체 왜 그렇게 금기시합니까?